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6.25 전쟁/전쟁 발발 (문단 편집) === 스탈린 주도설, 미 트루먼 행정부의 인식 === >The attack upon Korea makes it plain beyond all doubt that '''communism has passed beyond the use of subversion to conquer independent nations''' and will now use armed invasion and war. It has defied the orders of the Security Council of the United Nations issued to preserve international peace and security. >(...) >I know that all members of the United Nations will consider carefully the consequences of this latest aggression in Korea in defiance of the Charter of the United Nations. A return to the rule of force in international affairs would have far-reaching effects. The United States will continue to uphold the rule of law. >---- >대한민국에 대한 이러한 공격(북한의 공격)은 공산주의가 독립 국가를 정복하기 위해 체제전복이라는 수단을 넘어 이제는 무장침략과 전쟁을 사용할 것을 의심할 여지없이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이들은 국제평화와 안보를 지키기 위한 UN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 또한 무시하였습니다. >(중략) >저는 UN에 소속된 모든 국가들이 유엔한장을 무시한 체 한국에 대한 침략의 결과에 대해서 신중하게 고려할 것이라 봅니다. 국제관계에서 힘에의한 통치로의 복귀는 많은 분야에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미국은 계속해서 법치를 지킬 것입니다. >---- > - [[해리 S. 트루먼]]. 1950년 6월 27일 연설문[[https://digitalarchive.wilsoncenter.org/document/116192|#]] [[https://www.voakorea.com/korea/korean-war|'''미 트루먼 행정부의 인식''']] 현재 한국정부의 입장이 김일성 주도설이라면, 냉전 시절엔 대한민국 정부와[* 당시 국사교과서인데, "6⋅25 남침은, 북한 공산주의자들이 대한 민국 전역을 차지하려는 영토적 야욕을 가진 소련의 사주를 받아 일으킨 전쟁이다."라고 서술하고 있다.[[http://contents.history.go.kr/mobile/ta/view.do?levelId=ta_h42_0050_0010_0020|#]] 이는 21세기 이후 군대의 정훈교육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1950년 미국 정부의 입장은 6.25 전쟁은 스탈린이 주도하여 일어난 전쟁이라고 본다. 6.25 전쟁이 발발하는 즉시 미 트루먼 행정부가 가장 발빠르게 움직였던 이유이고, 수십만의 미 장병들을 한국에 파견했던 이유이다. 소련이 겉으로는 아닌 척 하면서 뒤로는 신생국가들을 무력으로 병합하여 그 세를 확장하려고 하고 있으니 그것을 저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스탈린 주도설의 시작은 미국 정부의 입장이었고, 이에 대해서 학자들은 왜 스탈린이 전쟁을 일으켰는지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었다. 대표적인 이론이 유럽에서의 미국의 압박을 분산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것이다. 6.25 전쟁은 스탈린의 소련팽창정책의 일환으로 미국의 봉쇄정책을 타개하기 위한 하나의 방안으로 기획되었다는 것이다. 국내학자로는 김영호 성신여대 교수가 있다. 이 이론의 전제는 먼저 스탈린과 김일성의 관계에 주목한다. 스탈린은 공산혁명의 1세대이고, 소련 근대화의 상징이자 전세계 공산당의 지도자이며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기도 했다. 그에 비해 김일성은 이제 막 북한이라는 작은 동네의 지도자가 된 자였고, 그것도 소련의 힘으로 된 것이었다. 이 둘의 관계는 달린이 이야기했던 것처럼 스탈린은 상위단위이고 김일성은 하위단위에 속한다. 쉽게 말하면 스탈린은 대통령이고 김일성은 낙하산으로 온 5급 공무원이다. 그런 5급 공무원이 기획안을 작성하여 보고했다고 한들 그 기획안을 승인한 것에 대한 주도자는 당연히 대통령이 되는 것이다. 스탈린 배후 조종설은 이러한 관점에서 6.25 전쟁을 바라보고 있다. 즉, 전쟁을 기획입안한 것에 김일성이 한 것은 의심할 바가 없지만 그 전쟁을 승인한 것은 공산사회의 최고정점인 소련이었고, 당연히 소련이 승인하였으니 최고결정권자로서 전쟁 주도권이 있다는 말이고 책임도 소련에게 있다는 것이다. 김일성이 무려 48번이나 소련을 찾아가 전쟁승인허가를 받으려 했다는 것도 [[바지사장|북한은 소련의 승인없이 자국의 군대를 동원할 수도 없는 존재였기 때문이며,]] 공산사회라는 거대한 세계질서의 하부구조로서 역할을 수행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전쟁이 발발의 주도권은 스탈린에게 있고 그 책임도 스탈린에게 있다. 6.25 전쟁은 스탈린이 배후에서 조종한 결과인 것이다. 이에 대해서 왜 소련이 전쟁을 일으켰느냐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다. 그 중 유력한 것이 미국의 시선 분산. 국제정세를 살피다가 미국의 시선을 분산시키고 동유럽에서의 확장을 도모하기 위해 만만한 한국에서 일을 벌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의 시선을 잘 끌기 위해 유엔 안보리에 불참하여 유엔군이 결성되는데 아무런 방해를 하지 않았고, 북한에 대한 적정한 수준의 군사적 지원과 원조를 통해 유엔군이 쉽게 전쟁을 끝맺지 못하게 하였던 것이다. 공군 지원도 적정선에서 운용하였고, 특히 38선 이남에 대한 공습을 최소화하였다. 그래서 일부러 T-44, T-54, IS-3, IS-4 같은 소련제 최신예 전차들을 북한과 중공에 전혀 제공하지 않고 2차 세계대전에 쓰던 구식무기를 지원하였다는 것이다. 소련의 대외정책은 러시아 제국 시절부터 유럽 중심으로 자국의 영향력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동유럽에서의 미국의 압박이 강화되고, 베를린 봉쇄의 실패와 런던에 핵무기가 배치하겠다는 미국의 선전에 대해 대응하기 위해서 한국에 전쟁을 일으켜 유럽에 집중된 미국의 시선을 분산하기 위한 고도의 기획전쟁이라는 것이 스탈린 배후 조종설이다. 이 이론에 대한 대중적인 반론은 다음과 같다. Q: 기획된 전쟁이라면 왜 소련이 먼저 전쟁을 기획하지 않았고, 왜 48번이나 거부의사를 밝혔다는 것인가?이다. A: 48번의 거부는 오히려 스탈린의 판단이 중요했다는 점을 반증한다. 스탈린 주도설은 소련이 전쟁을 기획했다기 보다는 전쟁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스탈린의 역할이 중대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48번의 거부의사로 인해서 김일성이 전쟁을 일으키지 못했다는 것은 다시 말해서 김일성이나 북한이 사실상 소련의 번국이나 지방정부에 지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사실이다. 또한 대통령도 모든 정책을 스스로 기획하지 않는고 단지 지시만 할 뿐이다. 즉, 스탈린이 직접 기획하지는 않았지만 김일성에게 전쟁을 지시하고 그에 대한 전쟁기획안이 부족하니 48번이나 반려시킨 것일수도 있다. Q: 전쟁보다는 국지전을 확대하는 것이 미국의 시선을 잡아두는 것이 더 효율적이지 않는가 하는 문제이다. 전쟁은 당연히 막대한 물자가 소비된다. 그에 비해 국지전은 적은 비용으로 사회불안을 가중시킬 수 있고, 당연히 전쟁발발위험으로인해 미국도 시선을 잡아둘 수 있다. 전쟁위기도 충분히 미국의 시선을 잡을 수 있다. 실제로 베를린봉쇄는 전쟁위기까지 이야기되었고, 이에 미국은 런던에 핵무기를 배치한다는 신문선전과 항공기를 통한 대규모 공중보급을 통해 소련을 압박하기도 했다. A: 국지전으로 미국의 시선을 잡아둘 수 있다는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 한국은 1945년 이후로 꾸준히 국지전이 벌어졌다. 북한의 남침을 강조하다보니 그 이전에는 국지전이 없다고 인식하는데, 그 전부터 한반도는 준전시 상태였다. 6.25전쟁 초기 채병덕이나 당시 국방부가 북한군의 습격을 전면공습이 아니라 국지전으로 판단한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38선에서는 심심하면 북한군과 충돌이 있었고, [[여수·순천 10.19 사건|여수와 순천]]에서도 북한에 동조하는 국군 내 일부 불순분자들이 반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정병준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6.25전쟁 이전 한반도는 국지전의 연속이라고 한다. 정병준. 『한국전쟁: 38선 충돌과 전쟁의 형성』. 파주: 돌베게, 2006.] 또한 국지전과 내전은 국제적인 이슈가 되기 어렵고 개입도 불가능하다.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에도 중국, 베트남, 그리스, 키프로스 등 각지에서 국지전이 지속되고 있었는데, 이런 와중에 한국에서의 국지전이 시선을 끌 수 있다는 것은 근거가 없다. 지금도 중동과 아프리카에서는 내전이 지속되고 있는데, 국제사회에서 이에 대한 큰 관심은 없다. Q: 소련의 소극적인 행보이다. 6.25 전쟁 이전부터 이후까지 소련의 행보는 상당히 소극적이었다는 것이다. 무기보급도 사실 신형전차를 공급하는 것이 그렇게 심각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소련이 북한의 국방강화를 위해 무기를 지원한다는 식으로 무기를 지원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실제로 T-34 전차도 이러한 방식으로 공급하였다. A: 소련의 소극적 행보는 스탈린 주도설의 근거 중 하나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소련의 소극적 행보는 스탈린 주도설의 근거 중 하나이다. 스탈린의 목적은 '''미국을 테스트''' 하는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소련이 소극적으로 행보하는 것이다. 본격적인 전쟁 전에 자신의 힘을 추스리는 동안 미국의 행동을 확인하는 목적으로 북한을 보낸 것이기 때문이다. 스타로 비유하자면 북한은 SCV인 것이다. 정찰하는데 탱크나 배틀크루저 등 주력군을 뭉텅이로 보내지는 않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